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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사도행전3장 11-16절) 섬길교회 부활주일예배 실황 2026년4월5일 오전11시 | 박경준 목사 | 2026-04-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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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3:11-16절 개역개정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 새로운 세상을 간절히 원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었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절망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제자들을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 만남 이후 수많은 제자들은 지금까지도 부활의 소식을 온 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생명과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부활 신앙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본을 따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헌신과 섬김의 공동체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2. 오늘 본문에서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이가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우리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기대하는 것은 눈앞의 ‘기적’입니까,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님’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인간이 아닌, 살아 계신 만왕의 왕께로 옮겨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우리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권능’과 ‘경건’을 철저히 부인합니다. 흔히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거나 선한 일을 많이 해야 능력이 나타난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13절). 이 기적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원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전적인 은혜의 결과입니다. 부활절에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입니다. 4. 베드로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과 과거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부활의 참된 의미를 설명합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14-15절).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 아닙니다. 아담 이후 인류를 지배해 온 ‘죽음의 질서’를 깨뜨리고 ‘생명의 질서’를 시작하신 절대적인 승리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이제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통치자로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은 이 생명의 주님 앞에 온전히 굴복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5. 이 부활의 능력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주저앉아 있던 자가 일어난 비결은 단 하나, ‘예수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특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믿음조차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점입니다. 구걸하던 자에게 믿음을 가질만한 어떤 조건이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이 선포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6. 사랑하는 섬길교회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죄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을 주십니다.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내 공로를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질문) "나는 지금 내 눈앞의 '문제 해결(기적)'에만 매달려 있습니까, 아니면 그 문제를 넘어 역사하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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