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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주목하며 이르되 우리를 보라 (사도행전3장1-5절) 섬길교회 주일예배 실황 2026년 3월22일 오전11시 박경준 목사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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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3:1-5절 개역개정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제공: 대한성서공회

1. 세상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공의보다 이익이, 나눔보다 효율이, 깊이 있는 생각보다 당장의 욕망이 우선시되는 시대입니다.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서 가장 미움받는 대상은 오히려 감사하고 자족하며 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에 매여 사는 인생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존귀한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으나, 당시 기득권층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약한 자들의 눈물을 보며 다가갔고,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기꺼이 나누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나비들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2.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단순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우주적 사건입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이 나라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위로부터 임하는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몇주간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시작한 직후 제자들의 행보를 주목하길 원합니다. 그들은 오순절 설교를 통해 신도의 수가 삼천 명이나 더해지는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는 동역자들이 일어나는 놀라운 사역의 현장 속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교만해지거나 질서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경건한 전통인 정해진 기도 시간을 잊지 않고 성실히 지켜나갔습니다.

3.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3시(제 구 시), 번제 예물 없이 오직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1절). 이들은 이제 예전처럼 짐승의 피를 의지하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성전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또한, 여전히 옛 습관과 율법의 멍에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적 열망을 품고 올라갔습니다. 바로 그 기도하러 가는 길 위에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한 사람을 마주하게 됩니다.

4. 사람들은 이 사람을 날마다 성전 미문에 앉혀 두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절). 사람들은 왜 그를 도와 가장 목 좋은 문 앞에 두었을까요? 단순히 자비의 마음이었을까요? 그는 구걸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자릿세나 운반비 명목으로 갈취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참하고 약한 자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여기서 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는 결국 누군가의 수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며 꾸짖으셨던 '강도의 소굴'이 바로 당시 성전과 그 주변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런 구걸의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착취하는 세상 시스템에서 나와,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5. 세상은 겉보기에 화려한 '미문'과 같지만, 그 본질은 그 앞에서 구걸하며 연명하는 비참함에 있습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3-4절). 성전 미문은 아름다웠으나 그 앞의 인생은 초라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주목하며 “우리를 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돈과 세상적 자비에 빼앗긴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통해 임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구걸하던 이는 여전히 '동전 몇 닢'을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실재(Reality)', 즉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6.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영원한 생명의 구원보다, 당장의 결핍을 채워줄 '은과 금'에 시선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무엇을 얻을까 바라보았다”는 5절의 고백은 우리 안에 뿌리 깊은 보편적 욕망을 대변합니다. 사랑하는 섬길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미문 앞에 주저앉아 세상이 던져주는 적선을 기다리며 구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세상을 보던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골드바보다 고귀한 생명을, 오늘 하루의 양식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질문) "우리를 보라"는 요청 앞에 나의 시선은 '은과 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전환되었습니까? 나의 '미문'은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구걸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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