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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김문경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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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rveway.or.kr/bbs/bbsView/32/5565895

그 날도 어김없이 빛이 어둠을 소리 없이 밀어 내는 가운데 날이 밝아 왔으리라.

 

하나님 안에서 성 삼위일체가 이미 합의를 보았던 날이며,

시간의 시작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 중 영적 대결의 선상에서,

절대선이 절대악과 가장 날카롭게 충돌될 수 밖에 없던 날,

어둠의 모든 세력들이 총 출동하여 빛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던 무모했던 날이자,

쓴 잔을 마시기에는 인간 예수의 육체가 너무나 가냘프고 연약했던 바로 그 날.

 

그 날을 맞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성 삼위일체의 하나의 위로써가 아니라,

가냘픈 육신의 한계 속에 스스로 갇힌, 인간의 몸을 가진 엄연한 현실적 인간으로써의

실재 앞에 느끼게 되는 엄청난 중압감에 눌린 예수 그리스도.

그런 실존적 인간 앞에,

이제 잠시 후에 들이닥칠 고통의 날카로움과 예리함과 그 하중은 엄청났을 것이며,

그 고통은 먼저 온 육신에 쓰나미처럼 일시에 밀어 닥칠 것이고 이미 합의 된 십자가 구속사역은 우선은 나중의 문제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무지막지한 고통 앞에 어쩔 수 없이 무너져 버리는 연약한 인간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으며, 연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통증 세포들을 포함한 육체조직의 아우성은 엄청난 볼륨과 속도로 온 육신의 말단부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될 수 밖에 없음은, 단순 명료하다 못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스스로 시간, 공간, 고통, 슬픔의 한계 속에 갇힌 존재로 내려 오셨지만, 한 개인이 느껴야 되는 고통의 합계를 장쾌하게 뛰어 넘어서 온 인류의 죄악을 단번에 덜어 내야 되는 엄중한 전 우주적 책무 앞에, 그 고통의 무게는 모든 인생들 죄악에 대응 되는 그 것의 총합이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대명제가 가로막고 있으니, 어찌 인간 예수도 그 날 그 순간이 서서히 닥쳐옴에 진저리 쳐지지 않을 수 없었으랴!

 

나무, 망치, 대못,

이것은 목수가 항상 만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이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곧 목수의 생활이자 삶 자체이다.

이것이 있기에 목수가 존재하고 이것으로 목수는 살아간다.

 

나무, 망치, 대못,

이것은 지금 십자가 처형의 수단이다.

 

그동안 내 삶을 지탱해주던 것들이 이제는 내 삶의 파괴자로 다가오는 구나.

평생에 걸친 내 삶의 수단이 지금은 나를 향해 처형의 수단이 되려 하는구나

지금까지 나와 늘 함께 해주던 것들이 이제는 나를 해하는 도구가 되려고 달려 드는구나!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22:42)

 

이날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향하여 전날 새벽 일찍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는 인간 예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죽음의 길에 이르는 바로 그 길, 물리적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만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을 것이고 심적인 부담은 하늘을 뚫을 것 같았을 것이다. 그 엄청난 고난의 길이 자신의 육신을 향하여 비수가 되어 옥죄어 올 때, 어린 시절 그 언젠가부터 희미하게 감지되었던 오늘 이 날의 정점을 향하여 직선으로 무참히 흐르고 있는 시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앞에 던져진 엄청난 불안과 초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 바야흐로 벌어지는 시각을 향하는 만큼 인간 예수에게는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22:45)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의 예수의 모습,

그걸 그려 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리라!

 

너무나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거기에 엄연히 존재하면서

인간의 이성과 사고의 영역을 뛰어 넘는 영적 세계의 암묵이며,

그 엄청난 우주적 낭비는 하나님의 속성이 바로 사랑 자체인 것에 기인함을 우리 인간들에게 지금까지도 애써 말해주고 있다.

 

창조주 자신이,

자신의 피조물 속 한계에 스스로 갇혀,

그 피조물의 파괴에 의해 자진 소멸됨으로 인하여,

피조물과의 화해를 이루어 낸다는

극적인 대 반전!

 

이걸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김문경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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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새벽별 2019.4.9 06:18

    구체적 사물과 심오한 개념을 대비시켜 대속의 모습의 그려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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