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18일 주일설교 말보다 나귀 같이 박경준목사 | 박경준목사 | 2019-08-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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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9장 9-10절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 1000만 반려동물 시대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장례를 어떻게 치루느냐 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땅이라도 매장은 불법이라고 합니다. 합법적인 사체처리 방법은 의료폐기물이나 생활폐기물로 버리는 방법과 비싼 돈을 주고 전문업체에서 화장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처럼 대형 동물일 경우는 사체 처리가 정말 쉽지 않다고 합니다. 2. 말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은 농업이나 운송을 위한 목적의 가축이 아니라 사냥과 전쟁을 상징하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그 나라에 말과 병거를 많이 소유하겠다는 의미는 방어보다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미사일과 같이 신속히 적진을 타격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히브리어로 ‘쑤쓰’라고 합니다. ‘깡충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뜻과 같이 말은 올라 타는 것도 힘들고 내려오기도 힘듭니다. 또한 말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개인,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를 세우신 이유 중에 하나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평화가 있게 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말은 교만의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말은 우월감과 교만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왕은 자신이 소유한 말의 수로 부와 권세와 군사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 고별설교 모음집입니다. 17장에는 혹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지거든 왕들은 반드시 세가지를 금해야 한다고 예언합니다. 첫째, 말을 많이 소유하지 말라.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셋째는 금은을 많이 축적하지 말라. 다윗 왕은 소바 왕을 쳐서 천 칠백 명의 마병을 붙잡았는데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말의 발힘줄을 끊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솔로몬 왕은 병거가 천사백 대로 곳곳에 말을 키우고 병거성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군사력을 과시함으로 주변 국가에게 조공을 요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조공을 요구한 것은 제사장 나라가 아니라 제국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4. 이렇게 말과 나귀는 정확히 대조를 이루는 성경의 동물입니다. 말에 비해 ‘나귀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장면일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왕의 입성을 보려고 수많은 인파가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름 부음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위임 받을 왕의 입성에 멋진 백마가 아닌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 5. 나귀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나귀는 발목이 강하고 넘어지지 않고 산지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잘 걷습니다. 나귀의 히브리어 단어는 ‘하모르’인데 부피 단위인 ‘호멜’이 여기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신 겸손의 왕이셨습니다. 말은 군림하고 정복하고 착취하는 세상적인 왕을, 나귀는 겸손하게 섬기고 순종하는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 구유에 누이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때 구유는 말구유가 아니고 나귀의 구유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나귀이 구유에서 시작하여서 나귀를 타시고 사명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나귀처럼 순종과 겸손으로 사셨습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보다는 나귀 같이 평화롭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말처럼 상대방을 공격하기 보다는 나귀처럼 상대방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길 원합니다. 유대인들은 ‘나귀 같은 사람’은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나귀처럼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고집이 세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히 낮아져 섬기며 희생하시길 축원합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스가랴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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